유령은 천장과 용광로 사이를 동동 떠돌아다니었다.
“저, 부패분자!”
내 혼은 유령처럼 나타나 화장터 천정에 매달려 정호를 손가락질하며 대성질호했다.
(네놈, 그래도 국장이노라고 추모사를 읽어? 추도사? 거 뭐야? 격에 맞지도 않게 시를 읊어? 네놈 누구를 큰 별과 등대에 견줘 번쩍 춰 올려? 원래 넌 권력에 아부를 일삼아온 아첨쟁이야. 뭐? 책짐 싫어나르던 쪽배 어쩌구? 저쩌구? 책짐 배 파도에 휘말려 가면 너 그렇게 좋아? 참, 어처구니 없어. 추도사를 하는 척 하면서 뭐 횡설수설해? 추도사는 청렴한 총경리 성호 총경리 읽어야 하는 건데. 왜 그 친구 안 보이지? 참, 내 총망히 염라전에 오면서 깜빡 잊었군. 성호한테 미리 부탁해두는 건데.)
장례식장이란 건 또 뭔가?
이상해. 장례식장 정면에 마땅히 걸려 있어야 할 편액이 보이지 않는다.
뭐, “고 사막의 마라토너 리종호선생(사장) 추도대회”라던가. 그런 글 보통 걸려 있는데 말이야. 대신 뭐 “특급구급실”이란 간판이 걸려 있지 않는가?
참, 살기 싫어 자살한 사람을 구급해 뭐 하는가? 훌 화장해 버리면 그만인데. 그럼 딸도 시름 놓고 직장에서도 시름놓겠는데. 왜 이다지도 사람을 두번 죽게 한단 말인가? 천천히 지루하게 말리워 죽게 만드는가?
(려향아, 어서 아빠 혼을 불러 육체와 함께 훌 태워버려라. 혼이 육체를 떠나 유령처럼 바람에 둥둥 떠돌아다니면 어쩌니? 난 더 고통스럽다. 혼마저 빨리 저세상에 보내달라.)
그러나 이상했다. 혼은 멀쩡한데유. 육체가 죽어서 그런지 입술이 천근 무게 돼 열리지 않는다. 말 한마디도 할 수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유서라도 남겨 놓았을 걸. 참. 후회막급이야. 세상에 후회약이라도 있다면 아마 후회로 만리장성이라도 쌓아놓았을 걸.
그래도 내 혼은 자꾸 하나 밖에 없는 무남독녀한테 뭐라고 자꾸 말하고 싶어지는게 이상하다.
(내 죽으면 비석도 필요없다. 이전에 난 내가 죽으면 골회를 내 부모 산소 옆에 파묻고 자그마한 비석이라도 세워달라고 했지. 죽어서라도 생전에 부모에게 다 하지 못한 효성을 다하고 뼈가루 돼서라도 부모 산소를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다 부질 없는 일이다. 육체가 다 타고 나머지 뼈가루가 어찌 부모를 지키고 효성을 한단 말이냐? 오히려 내 골회를 보면 내 부모가 얼마나 마음이 아파하겠느냐? 그러지 말자. 더는 그런 악착스런 불효를 저지르지 말자.)
내 혼은 좀 궁리하고 계속 려향이한테 부탁했다. 려향이 들을 수 있겠는지도 모르고.
(려향아, 골회함도 필요없다. 공돈을 팔지 말라. 그 돈이면 렬사들의 사적을 쓴 책 몇권이라도 찍어 렬사들의 영 전에 올리겠다. 그저 나를 다 태우면 뼈가루를 보에 싸서 부모 산소와 렬사릉원에 훌훌 뿌려달라. 비록 육신은 다 탔지만 혼은 바람처럼 날아다니면서 부모와 렬사들의 혼을 지키고 싶구나. 선렬들의 피로 바꿔온 이 땅을 영원히 지키고 싶다. 다만 죽어서 렬사들의 사적을 더 쓰지 못하는게 한일 뿐이야.)
려향이 이렇게 묻는 거 같았다.
“아빠, 그럼 왜 자살했는가요? 살아서 계속 렬사들의 사적을 책으로 써내야죠.”
그러나 나는 려향이한테 모든 걸 이실직고할 수 없었다. 내 입을 잘 못 놀렸다가 려향이 전도를 그르칠가 봐.
(려향아, 나는 모든 걸 무덤에 가지고 가련다. 더는 책을 내겠다고 하지 않겠다. 널 보고 “내 책을 한어로 번역해라, 일어와 영어로도 번역해라.”고 하지 않겠다. 너도 시름놓고 박사 공부나 해라. 이젠 내 근심하지도 말라. 책을 내겠다고 아글타글 건축공지에 가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 시름 싹 놔라. 너와 못할 말이지만, 내 공지에서 일하다가 남자의 그거 한쪽 잃어버린 거 너도 알잖니? 물론 안해도 없는 내가 그게 무슨 쓸데 있겠느냐만은.)
혼은 어느덧 옛날 내가 일하던 공지로 헛깨비처럼 훨훨 날아갔다. 공지에서는 귀신이 유령처럼 나타났다고 모두 피해 숨어 버린다.
(난 사람이지 귀신이 아닌데. 왜 저러지?)
헛깨비 같은 내 육체는 돈 한푼이라도 벌어 책을 내려고 철근을 메어 날라다 고층 아프트 건축물 천정 바닥에 펴고 가는 쇠줄로 가로 세로 얽어맨다.
꽈르릉 쾅!
툭!
요란한 굉음과 함께 한창 짓던 건물 천정이 푹 물앉았다. 나의 몸뚱이는 아래 층에 허공 곤두박혔다. 아차, 철근에 불중태로부터 아랫배로 해서 잔등까지 꿰창을 맞은듯이 찔리었다. 나는 이미 혼미상태에 처해 혼이 저승문턱에 간 채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생벼락이 어디 또 있겠는가! 지금 생각해도 온 몸에 소름이 끼친다.
그래도 한국 소방대원들은 목숨을 걸고 페허 속에 파묻힌 나를 구원했지. 먼저 탐지견이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으면서 나를 발견하고 컹컹 짖어댔다. 소방대원들은 페허 속에서 나를 파내 구급차에 실었다.
려향아, 너도 알잖니?
(나는 한국 의료일군들에 의해 한달만에 구급되어 죽음의 고비를 넘기었지. 그러나 내가 왜 자살했는가고? 얘야, 너무 슬퍼하지 말라. 아빠는 건설공지에서 신장과 고환 하나를 잃은 딱 그게 때문이 아니야. 사람 사는게 그게 삶의 전부가 아니야. 그러나 이젠 살고 싶잖다. 더 보고 듣고 살고 싶지 않다. 세상에 오래 사노라면 너무 보지 못할 걸 많이 본다. 네가 시집가지 않고 마흔살 다 돼가는게 가슴 아프다. 로처녀로 한뉘 살 예산이냐? 우리 전주 리씨 네 대에 와서 대 끊어지게 됐다. 아차, 아니야. 다 내 차실이지. 내 아들을 봐야는데. 무남독녀 너 하나만 낳고 말았으니까. 허나 네가 이제라도 시집가면 괜찮아. 지금은 애들이 엄마 성을 타도 된다고 하지 않느냐? 넌 생육년령일 때 꼭 시집가서 손자를 안겨달라. 그땐 구천에 가서도 난 눈을 감을 거 같아. 아들을 낳아도 엄마 성을 타게 하겠다는 남자한테 시집가라. 그래야 이 애비 원을 꺼줄 수 있잖니?...)
내 넉두린지. 유언인지 끝이 없다. 장례식장에서 웬 하소연 그리도 길가?
해는 저물어 가는데 마른 풀잎이 염라전 층계에 쓰러져 제네바행진곡을 연주한다.
처용이 달밤에 나타났는가?
인생도 붉게 타오르는 황혼의 탈을 바꿔쓰고 공포의 블랙홀로 휘말려들어가며 애처로운 죽음의 노래에 맞춰 탈춤을 춘다.
저게 뭐야?
탈을 쓴 허깨비 혼이 염라전에서 요염하게 치장한 무당들과 함께 너울너울 칼춤을 춘다. 입으로는 뭐라고 허무한 인생이 애닲아 중얼중얼 굿을 한다. 대머리가 제상의 바나나를 덥썩 쥐어 발가서 우물우물 씹으며 우멍눈으로 곁눈질하지 않겠는가.
아, 저 암범을 봐라. 나를 빨리 태우라고 려향한테 손삿대질 하고 있지 않는가.
혼은 암범 한족본댁 류려평을 보자 대번에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류려평은 어찌나 독살이 센지 공포 자체였다. 퉁사발눈깔을 희번뜩이면서 고래고래 고함칠 때면 진짜 오뉴월에 장독에 서리 다 칠 지경이었다.
암범의 표독스런 쌍까풀 퉁사발눈이 내 유체를 째려보면서 한쪽 구석에서 두 손을 합장하고 저주하고 있지 않겠는가.
“빨리 가옵소서. 시름 싹 놓고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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